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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외도서 | G100085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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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G100085
-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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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외도서
책 소개
시란 무엇일까? 『소동파에게 시를 묻다』는 이 물음으로 시작한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글자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시를 읊고, 노래한 시의 나라이다. 중국의 고대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시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 후세의 사람들이 손꼽은 시인은 이백, 두보, 도연명, 소식 등이 있다. 이 책의 연구 대상으로 삼은 동파 소식은 송대의 대문호로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을 열었고, 아름다운 시와 산문을 남기며 문학적 실천을 보여준 인물이다.
▲ 소식 입상
송나라 신종 황제에 의해 개혁이 추진되면서 도시민 계층이 두터워지고, 지식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문학사에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당말?송초의 부박한 문학유희를 부정하면서, 문학이란 깊이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해야 비로소 가치를 띤다는 문학의 혁신운동이 나타난 것이다. 문단의 이런 개혁적 흐름에 소식은 중요한 전제를 하나 더 추가한다. 아무리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았다 하더라도, 가장 좋은 기교로 표현될 때에 비로소 문학의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적 기예와 정신적 깊이가 함께해야 한다는 소위 ‘도기병진’론이다. 이는 다양한 문학 이론으로 발전한다. 이런 소식이기에 시를 물어,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인 안희진 교수는 공범례가 편찬한 중화서국판 『소식시집』 전 8권의 소식 시 2,725수 전체를 소재와 주제를 구분하여 나누었다. 또한 중화서국판 『소식문집』에서 문학과 예술에 관련된 모든 문장의 내용을 분류했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시 문학에 대해 묻는 것이 이 책이다.
『소동파에게 시를 묻다』는 총 3부 14장으로 구성하였다. 1부 <소식의 시가 사상>에서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답을 구한다. 시의 대상, 시상의 포착, 세계관, 시상의 경로, 시 창작의 규율과 방법을 묻고, 좋은 시란 어떤 것인지를 밝힌다. 2부 <소식 시의 표현>에서는 소식의 시를 분석한 결과를 알려 준다. 이 부에서는 소식이 사용한 다양한 소재들과 소식 시의 특징들을 알 수 있다. 3부 <소식의 시적 경지>에서는 인생과 예술에 대한 한층 성숙한 관점을 지닌 소식을 만날 수 있다.
각 장에는 그 장을 요약하여 정리한 <소식의 시론>이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하였고, 이 책에 소개된 시의 원문을 각주에 실어 소식 시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 소동파는 누구인가
본명은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그의 호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이들은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1037년 중국 사천성 미산현에서 태어난 소식은 21세 되던 해 황제가 있는 수도 개봉에서 진행된 과거 시험에 응시한다. 당시의 과거 시험 진행 책임자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구양수였다. 구양수는 시험답지를 점검하던 중 최고의 문장으로 채워진 답지를 발견한다. 이름 없이 적게 되어 있는 답지를 보며 그는 그 답지가 자신의 지인인 증공의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남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을 장원시켰다고 오해할 것이 염려되었다. 결국 그는 제일 잘 쓴 답지를 2등으로 하고 2등짜리를 장원으로 했다. 나중에 그 답지를 쓴 사람을 불러 확인해 보니 그건 구양수의 지인이 아니라 저 먼 사천성 시골에서 올라온 낯선 젊은이가 아닌가. 구양수는 그를 만나고 난 뒤 문인 친구들에게 말한다. “이제 우리도 저 젊은이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날이 머지않았네.” 이런 칭찬을 들으며 나타난 그가 나중에 송대 문단을 이끌게 되는 소식이다.
▲ 소식의 <묵죽도>
소식은 지방관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도시를 다니며 관직 생활을 한다. 당시 관료들은 개혁파와 보수파로 나뉘어 정쟁에 휩싸였는데, 보수파에 있던 소식은 개혁 세력에 의해 탄핵을 받고 지방관을 전전한다. 또한 개혁 세력의 당권파들은 소식이 시를 통해 황제와 나라를 비웃고 경멸하였다는 죄를 물어 죽이려고 하였다. 소식 시의 구절을 뒤집어 해석하여 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아낀 황제의 은덕으로 죽음은 면했으나 황주에서 귀향 생활을 한다. 황주에서 소식은 「적벽부」, 「염노교」와 같은 주옥 같은 문학을 탄생시킨다.
소식은 중앙의 요직에 발탁되었다가, 다시 귀양을 가는 등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부침을 거듭하다가 1101년 명예직에 봉해져 상경하던 중 병을 얻어 강소성 상주에서 병사한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 소동파와 관련된 일화
신종 황제가 어느 날 근신들과 시인을 논하는 자리에서 물었다. “소식과 필적할 만한 옛사람이 누구인가?” 근신들이 “이백입니다”라고 답하자 황제는 “아니다. 이백은 소식 같은 천부적 재능은 있었으나 소식만한 풍부한 학식은 없었다”고 했다.
― 송대 진엄초
여산에 올라 산과 계곡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린 소식은 시를 짓는 일이 번거롭다고 여겨 이곳에서는 시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산사에 들려 스님들을 만나니 “소자첨 오셨다!”고 인사를 한다. 이에 소식은 자기도 모르게 “짚신 신고 죽장을 끌며/돈 꾸러미를 꿰들고 유람하는데//이상도 해라, 깊은 이 산중에서/사람들이 나를 다 알아보다니.”라는 시를 읊는다. 방금 한 다짐이 우습게 되었지만 소식은 산의 경치를 둘러보며 몇 편의 시를 더 지어 남긴다. 산 구경에 마음을 빼앗겨서 시를 지을 틈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소식은, 뜻밖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자 자기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시구를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소식문집』에서 인용
▲ 소식 입상
송나라 신종 황제에 의해 개혁이 추진되면서 도시민 계층이 두터워지고, 지식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문학사에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당말?송초의 부박한 문학유희를 부정하면서, 문학이란 깊이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해야 비로소 가치를 띤다는 문학의 혁신운동이 나타난 것이다. 문단의 이런 개혁적 흐름에 소식은 중요한 전제를 하나 더 추가한다. 아무리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았다 하더라도, 가장 좋은 기교로 표현될 때에 비로소 문학의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적 기예와 정신적 깊이가 함께해야 한다는 소위 ‘도기병진’론이다. 이는 다양한 문학 이론으로 발전한다. 이런 소식이기에 시를 물어,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인 안희진 교수는 공범례가 편찬한 중화서국판 『소식시집』 전 8권의 소식 시 2,725수 전체를 소재와 주제를 구분하여 나누었다. 또한 중화서국판 『소식문집』에서 문학과 예술에 관련된 모든 문장의 내용을 분류했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시 문학에 대해 묻는 것이 이 책이다.
『소동파에게 시를 묻다』는 총 3부 14장으로 구성하였다. 1부 <소식의 시가 사상>에서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답을 구한다. 시의 대상, 시상의 포착, 세계관, 시상의 경로, 시 창작의 규율과 방법을 묻고, 좋은 시란 어떤 것인지를 밝힌다. 2부 <소식 시의 표현>에서는 소식의 시를 분석한 결과를 알려 준다. 이 부에서는 소식이 사용한 다양한 소재들과 소식 시의 특징들을 알 수 있다. 3부 <소식의 시적 경지>에서는 인생과 예술에 대한 한층 성숙한 관점을 지닌 소식을 만날 수 있다.
각 장에는 그 장을 요약하여 정리한 <소식의 시론>이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하였고, 이 책에 소개된 시의 원문을 각주에 실어 소식 시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 소동파는 누구인가
본명은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그의 호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이들은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1037년 중국 사천성 미산현에서 태어난 소식은 21세 되던 해 황제가 있는 수도 개봉에서 진행된 과거 시험에 응시한다. 당시의 과거 시험 진행 책임자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구양수였다. 구양수는 시험답지를 점검하던 중 최고의 문장으로 채워진 답지를 발견한다. 이름 없이 적게 되어 있는 답지를 보며 그는 그 답지가 자신의 지인인 증공의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남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을 장원시켰다고 오해할 것이 염려되었다. 결국 그는 제일 잘 쓴 답지를 2등으로 하고 2등짜리를 장원으로 했다. 나중에 그 답지를 쓴 사람을 불러 확인해 보니 그건 구양수의 지인이 아니라 저 먼 사천성 시골에서 올라온 낯선 젊은이가 아닌가. 구양수는 그를 만나고 난 뒤 문인 친구들에게 말한다. “이제 우리도 저 젊은이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날이 머지않았네.” 이런 칭찬을 들으며 나타난 그가 나중에 송대 문단을 이끌게 되는 소식이다.
▲ 소식의 <묵죽도>
소식은 지방관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도시를 다니며 관직 생활을 한다. 당시 관료들은 개혁파와 보수파로 나뉘어 정쟁에 휩싸였는데, 보수파에 있던 소식은 개혁 세력에 의해 탄핵을 받고 지방관을 전전한다. 또한 개혁 세력의 당권파들은 소식이 시를 통해 황제와 나라를 비웃고 경멸하였다는 죄를 물어 죽이려고 하였다. 소식 시의 구절을 뒤집어 해석하여 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아낀 황제의 은덕으로 죽음은 면했으나 황주에서 귀향 생활을 한다. 황주에서 소식은 「적벽부」, 「염노교」와 같은 주옥 같은 문학을 탄생시킨다.
소식은 중앙의 요직에 발탁되었다가, 다시 귀양을 가는 등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부침을 거듭하다가 1101년 명예직에 봉해져 상경하던 중 병을 얻어 강소성 상주에서 병사한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 소동파와 관련된 일화
신종 황제가 어느 날 근신들과 시인을 논하는 자리에서 물었다. “소식과 필적할 만한 옛사람이 누구인가?” 근신들이 “이백입니다”라고 답하자 황제는 “아니다. 이백은 소식 같은 천부적 재능은 있었으나 소식만한 풍부한 학식은 없었다”고 했다.
― 송대 진엄초
여산에 올라 산과 계곡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린 소식은 시를 짓는 일이 번거롭다고 여겨 이곳에서는 시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산사에 들려 스님들을 만나니 “소자첨 오셨다!”고 인사를 한다. 이에 소식은 자기도 모르게 “짚신 신고 죽장을 끌며/돈 꾸러미를 꿰들고 유람하는데//이상도 해라, 깊은 이 산중에서/사람들이 나를 다 알아보다니.”라는 시를 읊는다. 방금 한 다짐이 우습게 되었지만 소식은 산의 경치를 둘러보며 몇 편의 시를 더 지어 남긴다. 산 구경에 마음을 빼앗겨서 시를 지을 틈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소식은, 뜻밖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자 자기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시구를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소식문집』에서 인용
목차
동파 소식에게 시를 물으며
소식의 시가 사상
1. 시란 무엇인가
2. 시는 무엇을 노래하는가
3. 시상은 어떻게 해야 포착되는가
4. 맑은 영혼이 여는 세계란 어떤 것인가
5. 시상은 어떤 경로로 표현되는가
6. 시 창작의 규율은 무엇인가
7. 어떻게 창작할 것인가
8. 좋은 시란 어떤 것인가
소식 시의 표현
1. 소재와 시어
2. 해학과 풍자
3. 비유와 웅변
소식의 시적 경지
1. 사변
2. 달관
3.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