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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외도서 | G100381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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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단순히 연구 논문 몇 편과 희귀 자료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한민족이 중앙아시아 대륙에 개간한 민족문화의 텃밭을 살펴본다는 데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연구는 민족언어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한민족 문화권 전반에 대한 각성된 인식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라는 의의가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국제한인문학회, 중앙아시아한국학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등이 관련된 연구논문이 실렸다. 이는 그동안 다뤄졌던 개별적인 작가론이나 작품론에서 그치지 않고, 한민족 문화권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고려인 문학의 위상과 의의를 구명하려는 연구 수행의 결과이다. 2부는 모두 8명의 현지 고려인 문인 작품으로 시 46편, 수필 2편, 희곡 5편으로 총 57편의 발굴 자료가 실렸다.
그 중에서도 강태수의 단편소설 <그날과 그날밤>은 22년의 원시림 격리생활 체험을 바탕에 두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최영근의 단편소설 <비겁쟁이>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고향으로부터 사할린의 산판 벌목장으로 징용되어 간 동포들의 생활상과 그 심상의 내면풍경이 펼쳐진다. 이와같은 작품이 아니면 한국문학으로서는 그 역사적 시기의 강제노동 실태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문금동의 단편소설 <솔밭관 토벌>은 1920년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솔밭관 전투의 결과와 배경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또한 한국문학에서는 그 사태의 실상을 짐작하기 어려운 희귀한 자료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금동의 아버지가 독립군을 몰래 지원하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는 현장을 순진한 동심의 눈으로 일일이 목격하는 이야기이다. 화자의 아버지가 당한 혹독한 고문은 동시대 우리 동포들이 타국 땅에서 당해야 했던 수난사를 증명하고 있다.
김부르트의 소설 <카니스트라>는 현대 현지 젊은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학적 자료이며, 리시연의 수필 두 편은 1990년대 초반 현지 노동에 동원된 북한 노동자들의 처참한 생활상과 반항의지를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자료 발굴의 경과와 의미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가운데서도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은, 이념의 장벽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호가 개방되자마자 우리말 창작자들의 세대가 사라져가는 절박한 상황에 당착하게 되었다. 이미 고려인 5세, 6세에까지 이른 젊은 세대들은 우리말 사용 자체가 어려워지고 소수 민족으로서 특성화 된 명맥을 이어오던 고려 문화의 보존도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비극적 근대사의 희생자로서 출발한 삶의 궤적 속에 고유의 민족문화와 문학이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과 이를 소중하게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의지는 그 중요성을 재차 강조해서 말해야 옳을 것이다.
국제한인문학회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는 이와 같은 시의성과 당위성을 감안하여, 2010년 6월 19일 서울 경희대학교에서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에 관한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특히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의 의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뒤이어 8월 13일부터 1주일간 동 학회 및 협회의 임원들이 카자흐스탄 현지의 알마티와 고려인 첫 정착지 우슈토베 등을 방문하여 공동 국제학술회의와 자료 발굴 및 수집 등의 학술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알마티에서는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에서 중앙아시아한국학회와 함께 학술회의를 열고, 고려인 문학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의 원본 자료 수집은, 아마도 우리말로 작품 창작을 한 세대의 마지막 유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으로는 이처럼 묻혀 있던 육성 자료는 더 이상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중론이었다. 이 자료들은 그냥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파란과 굴곡의 근대사를 감당하며 살았던 현지 고려인들의 애환과 그것이 환기하는 이주 민족사의 실체를 실감으로 보여주는 값진 기록들이다.
비록 그것의 문학적 성취나 예술적 가치가 이미 보고되고 검토된 다른 디아스포라 문학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 단처를 훨씬 상회하는 역사적 삶의 사료로서 그리고 민족사적 기록의 실상으로서 존재값을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다시 유사한 발굴의 가능성이 없다는 희소성에 비추어서도 주의 깊은 관심과 관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발굴 자료 목록
강태수
소시집 <80고개 오르면서>
(머리말) 몇 마디
<일요일>
<높은 마루턱 향하여>
<푸른 쪼각 하나>
<제발!!>
<외짝사랑>
<초가을>
<가을비>
<불행과 행복>
<마음속에 넣어 두었던 글>
<까옥까옥>
<꿈결>
<봄날의 하루저녁>
<이 마음 그리도 몰라!>
<마슈크산에서>
<무제1~8>
시 <사람의 한생>
<푸르무레한 눈>
<보름달>
<한밤>
<환상>
<카라싸이 마을에서>
<사랑을 부르짖노라!>
<무제9~12>
단편 <그날과 그날밤>
리 왜체슬라브
시 <조선의 소나무>
<생각>
<개성의 마돈나>
<고향땅에 대한 추억>
<생>
<집으로 돌아가는 길>
<꿈에 본 증조부>
<어린시절>
<소리>
<동향인>
<북극성>(노래말)
리시연
수필 <체끄도멘 림업사업소 노동자들의 신세>, 199?. 7. 10
<원동 림업사업소에 와 잇는 민주조선근로자들의 이모저모>, 1992.7.7
문금동
단편 <솔밭관 토벌>
최영근
단편 <비겁쟁이>
김부르트
단편 <카니스트라>
장영진
시 <나부루스 명절>
<비참한 가을>
희곡 <어머니와 아들>
한진 <한진희곡집>
<산부처>
<의부어머니>
<나무를 흔들지 마라>
<토끼의 모험>
발굴된 자료의 내용과 문학적 의의
발굴된 자료는 정리된 목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두 8명의 시인·작가의 작품으로 전체 숫자는 시 46편, 소설 4편, 수필 2편, 희곡 5편으로 총 57편에 이른다.
강태수의 작품은 시 33편, 소설 1편이 발굴되었다. 이은영, 김광현 등과 더불어 고려인 문학의 한 세대를 대표한 강태수는 조명희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구한말 전후에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중심의 연해주 지역에 모여 살던 한인들의 우리말 신문인 <선봉>에 정기적인 문예면을 마련한 조명희는, 10년가량 현지에서 강태수 이외에도 조기천, 연성용 등 청년들의 우리말 문학을 지도했다. 이들은 1937년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이후 카자흐스탄 알마티 등지에서 <선봉>의 후신인 <레닌기치>, 현재의 <고려일보>를 창간하고 이를 중심으로 고려인 문단을 형성했다. 강태수는 강제 이주 후 고려인 사회를 지속적으로 지켜본 문인 중 하나로 2001년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그는 강제 이주 직후인 1938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사범대학 벽보에 실은 <밭갈이하는 처녀에게>라는 시 때문에, 북극 원시림에서 22년이란 세월을 사회와 격리된 채 보냈다. 노년에 이른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세월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다. 많은 고려인들이 그러했듯이 구소련 사회에 적응하면서 오랜 세월을 인내해 온 소수민족 이방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1938년 강제 이주의 불가항력적 시련 앞에서 죄인처럼 죄수차를 타고 가는 시인이 여전히 조국과 동포를 사랑하고 있다고 토로하는 시 <마음에 넣어두었던 글>이나, 봄볕을 쬐면서 자신의 운명과 세월을 반추하는 시 <무제10>등이 그의 현실적 정황을 대변한다. 그가 20여 편에 이르는 시를 한데 묶어두고 ‘80고개 오르면서’라는 제목과 ‘몇 마디’라는 머리말을 써 둔 것을 보면 이를 하나의 소시집으로 출간하려 준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단편소설 <그날과 그날밤>은 22년의 원시림 격리생활 체험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옛 친구를 찾아온 주인공 춘일은 가까스로 득범을 만나 밤늦도록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 나눈다. 온갖 역사와 세월의 풍상을 다 겪은 80객 작가의 작품에는, 아무런 시비도 욕망도 없고 다만 일생을 반추하는 회한과 초탈의 감상만 서려 있다. 그 대화와 회상의 곳곳에 베를린 함락과 같은 역사적 사건, 문학적 스승 조명희, 고려인 문화의 중심이었던 조선극장 등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고 옛 여인 혜숙의 추억까지 등장한다. 고려인 공동체의 삶과 그 내면을 들여다보기에는 아주 좋은 자료에 해당한다.
리 왜체슬라브는 리 왜체슬라브 보리쓰비치라는 풀 네임과 리영광이란 한국명을 갖고 있고, 1944년 우즈베키스탄 타쉬겐트에서 태어나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해 온 시인이다.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 노어학과를 졸업했으며 <레닌기치> 타쉬겐트 주재 기자를 지냈다. 1966년 이후 러시아어 시 작품 1백여 편을 발표한 시인으로서, 2002년에는 대구 세계문학대회에 참가차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이번에 발굴된 <조선의 소나무>등 10편의 시는 남경자 시인의 번역이며, 시상이 단순하고 언어도 직정적이기는 하나 조국과 민족, 고향과 동족에 대한 곡진한 정서를 난삽한 수식 없이 잘 표현하고 있다.
리시연의 수필 두 편, <체끄도멘 림업사업소 노동자들의 신세>와 <원동 림업사업소에 와 있는 민주조선 근로자들의 이모저모>는 1992년 7월 하바로프스크에서 작성되었다.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벌목장 노동자들의 처절한 현실을 실증적으로 서술한다. ‘조소림업체결’에 따라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과 이들을 관리하는 간부들 사이의 착취 및 비인도적인 처사들, 북한의 현실과 이에 대한 재외 인민의 심사, 림업사업소의 조직 체계와 뇌물의 액수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아마도 현장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이는 이 글의 작자 리시연은, 북한 체제 자체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바는 없지만 림업사업소의 ‘큰 감옥’을 폭로하면서 추후 이러한 고발의 글을 계속해서 쓸 것임을 다짐한다.
문금동의 단편소설 <솔밭관 토벌>은 1920년 독립군과 일본군의 사이에 벌어진 솔밭관 전투의 결과와 배경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 이러한 문학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문학으로서는 매우 뜻깊은 소설 자료의 발견에 해당한다. 이 소설의 화자 금동이 작가 문금동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발화하는 실명소설이며, 금동의 아버지가 독립군을 몰래 지원하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는 현장을 순진한 동심의 눈으로 일일이 목격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독립전쟁에 직접 참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후원하고 관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아버지가 당한 혹독한 고문의 서술은 동시대 우리 동포들이 타국 땅에서 나라 잃은 아픔과 함께 당해야 했던 수난사를 증명한다. 어머니 없는 가정에서 금동의 누이와 어린 동생이 아버지의 숨은 의지를 뒤따르며 동족을 위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은, 그것이 갖는 시대적 의미보다 각기 사건의 구체성으로 인하여 더욱 실효성 있는 감응력을 촉발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독립운동 현장의 실상을 증언자의 눈을 통해 그려낸 기록성의 가치를 끌어안고 있으며, 비록 고어투의 문장과 북방 방언으로 점철되어 있으나 그러한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사료로서의 의미가 크다.
최영근의 단편소설 <비겁쟁이>는 2006년 알마티에서 창작된 것으로 작품의 말미에 기록되어 있다. 작가 최영근은 아마도 <선봉>과 <레닌기치>의 후신인 <고려일보>에서 주필과 사장을 지낸 그 최영근일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에 고향으로부터 사할린의 산판 벌목장으로 징용되어 간 동포들이 노역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비겁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춘섭을 중심으로 결혼과 친구 관계 등이 상세하게 서술된다. 왜 그가 끝까지 비겁쟁이로 남는가에 대해서는 합당한 논리가 제시되지 않았으나, 그 생활상의 세부는 주목에 값할 만하다.
김 부르트의 <카니스트라>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는 달리, 놀랍게도 젊은 세대의 방황과 각성을 소재로 한 성장소설이다. 단순히 성장소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건 구성의 조직성과 속도감, 문학적 문장의 묘미까지 갖춘 소설다운 소설이다. 작가 김 부르트는 1948년 우즈베키스탄 타쉬겐트에서 태어났고 1976년부터 주로 러시아어로 소설을 썼다. <고려일보> 타쉬겐트 특파원으로 있다가 1997년 7월에 창간된 <고려신문>의 편집장을 지냈다. <고려신문>은 경영난으로 지금은 발행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러시아어로 휘발유통을 말하는, ‘카니스트라’라는 별명을 가진 ‘바샤’라는 소년이 주인공이며, 그의 친구와 좋아하는 여자아이 등과 더불어 세상살이 이치에 눈 떠가는 입사(入社)의 과정이 날렵하고 비유적인 어법들을 동원하며 묘사되고 있다.
장영진의 시 <나부르스 명절>은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봄 명절을 노래하고, <비참한 가을>은 강제 이주에서 노력 영웅에까지 이르는 세월을 노래하고 있다. 소품의 희곡 <어머니와 아들>은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한 아들에 대해 걱정하는 어머니, 마침내 혼인약조를 한 처녀와 만나는 장면 등을 아주 간략하면서도 강렬하게 핵심적인 주제를 조명해 보인다. 이들 작품들 또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삶과 그 내면의식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범례라 할 수 있다.
<한진희곡집> 은 1988년 알마티의 사수싀출판사에서 간행되었으나 그동안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명이 한대용인 한진은 1950년대 후반에 소련으로 망명한 북한 출신의 고려인 문인이다. 1988년에 알마타에서 출판된 <한진희곡집> 에는 모두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작품들의 면면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산부처>는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살아있는 부처’라고 자처하며 횡포가 심했던 폭군 궁예의 이야기이다. 궁예가 음모를 꾸며 양길을 제거하고 왕이 되는 과정의 1막, 전제군주로서 횡포가 심해 백성이 도탄에 빠지는 2막, 왕건이 궁으로 쳐들어오자 도망가다가 죽는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고려인 문학 중에서 민족의 역사를 다룬 많지 않은 작품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작가는 민족의 과거사 보다 궁예의 모습을 통해 스탈린과 김일성을 비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의부어머니>는 작품 말미에 1965년이라고 창작연도를 밝히고 있다. 애 딸린 홀아비에게 시집왔지만 그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새 아내를 얻는다. 어머니는 홀로 그 아이들을 정성으로 키우지만, 자신이 의붓어머니인 것을 자식들이 알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도 자식들은 늙어서 되돌아온 친아버지보다도 의붓어머니를 따른다. 이 희곡에는 남의 땅을 대신 경작해주는 ‘고본질’ 농업에 대한 상반된 시각과 그에 따른 갈등, 남자 아이를 중요시 하는 풍조, 학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별다른 계획 없이 술로 세월을 보내는 젊은이 등 당시 고려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무를 흔들지 마라>는 한진이 모스크바 국립연극대학교 희곡과에서 유학할 때 졸업작품으로 제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ㆍ25 전쟁 때 부대에서 낙오된 남한 군인 한 명과 북한 군인 한 명이 큰 홍수가 일어나자 한 나무로 피신한다는 허구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두 사람은 한 나무의 양쪽에 올라 앉아 설전을 벌이지만, 점차 가까워져서 각자가 소지하고 있던 술과 담배를 나누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경주 김가라는 점에서 서로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물에 떠내려 온 처녀 춘희까지 어울려 세 사람은 나무 위에서 잠시나마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드디어 물이 잦아들고 나무에서 내려온 세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통일이 되는 날 이 나무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군사분계선 안에 있는 이 나무는 그 후 삼십여 년 동안 사람의 그림자를 보지 못 하였다는 춘희의 방백으로 막이 내린다.
<토끼의 모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끼전>의 내용과 동일하다. 2010년 여름에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을 방문했을 때, 최근에 이 작품을 공연한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인기 있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주인공 토끼가 여자라는 점이다. 작품 말미에 이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있는데, 토끼 역을 맡을 배우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여자 역으로 고쳤다고 한다. <고려극장>의 남자 배우가 부족한 상황에 대해서는,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3대 춘향이 최 따찌아나 씨도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작품을 공연하는데, 원래의 내용은 두 남자와 한 여자 주인공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두 여자와 한 남자 주인공으로 각색하여 공연했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 가운데 일부, 곧 강태수의 시 일부와 단편 <그날과 그날밤> 그리고 최영근의 단편 <비겁쟁이>가 중앙아시아문인협회에서 발간한 <고려문화> 1ㆍ2호에 실린 바 있으나 국내 문단에서는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함께 수록했다. <한진희곡집> 또한 사정이 마찬가지여서 동일하게 정리했으며, 이 희곡집에 실린 4편의 작품 중 <의부어머니>와 <나무를 흔들지 말라>만 수록했다.
거듭 밝혀두지만 이 작품들은 그 문학적 수준과 미학적 가치보다는 현지 고려인의 생활상과 심상의 내면풍경들을 적출하는 데 효용성이 있다. 이는 민족언어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한민족 문화권 전반에 대한 각성된 인식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가 된다.
이 책의 구성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국제한인문학회, 중앙아시아한국학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등이 관련된 연구논문이 실렸다. 이는 그동안 다뤄졌던 개별적인 작가론이나 작품론에서 그치지 않고, 한민족 문화권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고려인 문학의 위상과 의의를 구명하려는 연구 수행의 결과이다. 2부는 모두 8명의 현지 고려인 문인 작품으로 시 46편, 수필 2편, 희곡 5편으로 총 57편의 발굴 자료가 실렸다.
그 중에서도 강태수의 단편소설 <그날과 그날밤>은 22년의 원시림 격리생활 체험을 바탕에 두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최영근의 단편소설 <비겁쟁이>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고향으로부터 사할린의 산판 벌목장으로 징용되어 간 동포들의 생활상과 그 심상의 내면풍경이 펼쳐진다. 이와같은 작품이 아니면 한국문학으로서는 그 역사적 시기의 강제노동 실태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문금동의 단편소설 <솔밭관 토벌>은 1920년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솔밭관 전투의 결과와 배경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또한 한국문학에서는 그 사태의 실상을 짐작하기 어려운 희귀한 자료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금동의 아버지가 독립군을 몰래 지원하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는 현장을 순진한 동심의 눈으로 일일이 목격하는 이야기이다. 화자의 아버지가 당한 혹독한 고문은 동시대 우리 동포들이 타국 땅에서 당해야 했던 수난사를 증명하고 있다.
김부르트의 소설 <카니스트라>는 현대 현지 젊은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학적 자료이며, 리시연의 수필 두 편은 1990년대 초반 현지 노동에 동원된 북한 노동자들의 처참한 생활상과 반항의지를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자료 발굴의 경과와 의미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가운데서도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은, 이념의 장벽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호가 개방되자마자 우리말 창작자들의 세대가 사라져가는 절박한 상황에 당착하게 되었다. 이미 고려인 5세, 6세에까지 이른 젊은 세대들은 우리말 사용 자체가 어려워지고 소수 민족으로서 특성화 된 명맥을 이어오던 고려 문화의 보존도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비극적 근대사의 희생자로서 출발한 삶의 궤적 속에 고유의 민족문화와 문학이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과 이를 소중하게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의지는 그 중요성을 재차 강조해서 말해야 옳을 것이다.
국제한인문학회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는 이와 같은 시의성과 당위성을 감안하여, 2010년 6월 19일 서울 경희대학교에서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에 관한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특히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의 의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뒤이어 8월 13일부터 1주일간 동 학회 및 협회의 임원들이 카자흐스탄 현지의 알마티와 고려인 첫 정착지 우슈토베 등을 방문하여 공동 국제학술회의와 자료 발굴 및 수집 등의 학술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알마티에서는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에서 중앙아시아한국학회와 함께 학술회의를 열고, 고려인 문학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의 원본 자료 수집은, 아마도 우리말로 작품 창작을 한 세대의 마지막 유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으로는 이처럼 묻혀 있던 육성 자료는 더 이상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중론이었다. 이 자료들은 그냥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파란과 굴곡의 근대사를 감당하며 살았던 현지 고려인들의 애환과 그것이 환기하는 이주 민족사의 실체를 실감으로 보여주는 값진 기록들이다.
비록 그것의 문학적 성취나 예술적 가치가 이미 보고되고 검토된 다른 디아스포라 문학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 단처를 훨씬 상회하는 역사적 삶의 사료로서 그리고 민족사적 기록의 실상으로서 존재값을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다시 유사한 발굴의 가능성이 없다는 희소성에 비추어서도 주의 깊은 관심과 관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발굴 자료 목록
강태수
소시집 <80고개 오르면서>
(머리말) 몇 마디
<일요일>
<높은 마루턱 향하여>
<푸른 쪼각 하나>
<제발!!>
<외짝사랑>
<초가을>
<가을비>
<불행과 행복>
<마음속에 넣어 두었던 글>
<까옥까옥>
<꿈결>
<봄날의 하루저녁>
<이 마음 그리도 몰라!>
<마슈크산에서>
<무제1~8>
시 <사람의 한생>
<푸르무레한 눈>
<보름달>
<한밤>
<환상>
<카라싸이 마을에서>
<사랑을 부르짖노라!>
<무제9~12>
단편 <그날과 그날밤>
리 왜체슬라브
시 <조선의 소나무>
<생각>
<개성의 마돈나>
<고향땅에 대한 추억>
<생>
<집으로 돌아가는 길>
<꿈에 본 증조부>
<어린시절>
<소리>
<동향인>
<북극성>(노래말)
리시연
수필 <체끄도멘 림업사업소 노동자들의 신세>, 199?. 7. 10
<원동 림업사업소에 와 잇는 민주조선근로자들의 이모저모>, 1992.7.7
문금동
단편 <솔밭관 토벌>
최영근
단편 <비겁쟁이>
김부르트
단편 <카니스트라>
장영진
시 <나부루스 명절>
<비참한 가을>
희곡 <어머니와 아들>
한진 <한진희곡집>
<산부처>
<의부어머니>
<나무를 흔들지 마라>
<토끼의 모험>
발굴된 자료의 내용과 문학적 의의
발굴된 자료는 정리된 목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두 8명의 시인·작가의 작품으로 전체 숫자는 시 46편, 소설 4편, 수필 2편, 희곡 5편으로 총 57편에 이른다.
강태수의 작품은 시 33편, 소설 1편이 발굴되었다. 이은영, 김광현 등과 더불어 고려인 문학의 한 세대를 대표한 강태수는 조명희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구한말 전후에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중심의 연해주 지역에 모여 살던 한인들의 우리말 신문인 <선봉>에 정기적인 문예면을 마련한 조명희는, 10년가량 현지에서 강태수 이외에도 조기천, 연성용 등 청년들의 우리말 문학을 지도했다. 이들은 1937년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이후 카자흐스탄 알마티 등지에서 <선봉>의 후신인 <레닌기치>, 현재의 <고려일보>를 창간하고 이를 중심으로 고려인 문단을 형성했다. 강태수는 강제 이주 후 고려인 사회를 지속적으로 지켜본 문인 중 하나로 2001년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그는 강제 이주 직후인 1938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사범대학 벽보에 실은 <밭갈이하는 처녀에게>라는 시 때문에, 북극 원시림에서 22년이란 세월을 사회와 격리된 채 보냈다. 노년에 이른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세월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다. 많은 고려인들이 그러했듯이 구소련 사회에 적응하면서 오랜 세월을 인내해 온 소수민족 이방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1938년 강제 이주의 불가항력적 시련 앞에서 죄인처럼 죄수차를 타고 가는 시인이 여전히 조국과 동포를 사랑하고 있다고 토로하는 시 <마음에 넣어두었던 글>이나, 봄볕을 쬐면서 자신의 운명과 세월을 반추하는 시 <무제10>등이 그의 현실적 정황을 대변한다. 그가 20여 편에 이르는 시를 한데 묶어두고 ‘80고개 오르면서’라는 제목과 ‘몇 마디’라는 머리말을 써 둔 것을 보면 이를 하나의 소시집으로 출간하려 준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단편소설 <그날과 그날밤>은 22년의 원시림 격리생활 체험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옛 친구를 찾아온 주인공 춘일은 가까스로 득범을 만나 밤늦도록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 나눈다. 온갖 역사와 세월의 풍상을 다 겪은 80객 작가의 작품에는, 아무런 시비도 욕망도 없고 다만 일생을 반추하는 회한과 초탈의 감상만 서려 있다. 그 대화와 회상의 곳곳에 베를린 함락과 같은 역사적 사건, 문학적 스승 조명희, 고려인 문화의 중심이었던 조선극장 등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고 옛 여인 혜숙의 추억까지 등장한다. 고려인 공동체의 삶과 그 내면을 들여다보기에는 아주 좋은 자료에 해당한다.
리 왜체슬라브는 리 왜체슬라브 보리쓰비치라는 풀 네임과 리영광이란 한국명을 갖고 있고, 1944년 우즈베키스탄 타쉬겐트에서 태어나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해 온 시인이다.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 노어학과를 졸업했으며 <레닌기치> 타쉬겐트 주재 기자를 지냈다. 1966년 이후 러시아어 시 작품 1백여 편을 발표한 시인으로서, 2002년에는 대구 세계문학대회에 참가차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이번에 발굴된 <조선의 소나무>등 10편의 시는 남경자 시인의 번역이며, 시상이 단순하고 언어도 직정적이기는 하나 조국과 민족, 고향과 동족에 대한 곡진한 정서를 난삽한 수식 없이 잘 표현하고 있다.
리시연의 수필 두 편, <체끄도멘 림업사업소 노동자들의 신세>와 <원동 림업사업소에 와 있는 민주조선 근로자들의 이모저모>는 1992년 7월 하바로프스크에서 작성되었다.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벌목장 노동자들의 처절한 현실을 실증적으로 서술한다. ‘조소림업체결’에 따라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과 이들을 관리하는 간부들 사이의 착취 및 비인도적인 처사들, 북한의 현실과 이에 대한 재외 인민의 심사, 림업사업소의 조직 체계와 뇌물의 액수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아마도 현장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이는 이 글의 작자 리시연은, 북한 체제 자체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바는 없지만 림업사업소의 ‘큰 감옥’을 폭로하면서 추후 이러한 고발의 글을 계속해서 쓸 것임을 다짐한다.
문금동의 단편소설 <솔밭관 토벌>은 1920년 독립군과 일본군의 사이에 벌어진 솔밭관 전투의 결과와 배경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 이러한 문학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문학으로서는 매우 뜻깊은 소설 자료의 발견에 해당한다. 이 소설의 화자 금동이 작가 문금동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발화하는 실명소설이며, 금동의 아버지가 독립군을 몰래 지원하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는 현장을 순진한 동심의 눈으로 일일이 목격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독립전쟁에 직접 참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후원하고 관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아버지가 당한 혹독한 고문의 서술은 동시대 우리 동포들이 타국 땅에서 나라 잃은 아픔과 함께 당해야 했던 수난사를 증명한다. 어머니 없는 가정에서 금동의 누이와 어린 동생이 아버지의 숨은 의지를 뒤따르며 동족을 위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은, 그것이 갖는 시대적 의미보다 각기 사건의 구체성으로 인하여 더욱 실효성 있는 감응력을 촉발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독립운동 현장의 실상을 증언자의 눈을 통해 그려낸 기록성의 가치를 끌어안고 있으며, 비록 고어투의 문장과 북방 방언으로 점철되어 있으나 그러한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사료로서의 의미가 크다.
최영근의 단편소설 <비겁쟁이>는 2006년 알마티에서 창작된 것으로 작품의 말미에 기록되어 있다. 작가 최영근은 아마도 <선봉>과 <레닌기치>의 후신인 <고려일보>에서 주필과 사장을 지낸 그 최영근일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에 고향으로부터 사할린의 산판 벌목장으로 징용되어 간 동포들이 노역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비겁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춘섭을 중심으로 결혼과 친구 관계 등이 상세하게 서술된다. 왜 그가 끝까지 비겁쟁이로 남는가에 대해서는 합당한 논리가 제시되지 않았으나, 그 생활상의 세부는 주목에 값할 만하다.
김 부르트의 <카니스트라>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는 달리, 놀랍게도 젊은 세대의 방황과 각성을 소재로 한 성장소설이다. 단순히 성장소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건 구성의 조직성과 속도감, 문학적 문장의 묘미까지 갖춘 소설다운 소설이다. 작가 김 부르트는 1948년 우즈베키스탄 타쉬겐트에서 태어났고 1976년부터 주로 러시아어로 소설을 썼다. <고려일보> 타쉬겐트 특파원으로 있다가 1997년 7월에 창간된 <고려신문>의 편집장을 지냈다. <고려신문>은 경영난으로 지금은 발행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러시아어로 휘발유통을 말하는, ‘카니스트라’라는 별명을 가진 ‘바샤’라는 소년이 주인공이며, 그의 친구와 좋아하는 여자아이 등과 더불어 세상살이 이치에 눈 떠가는 입사(入社)의 과정이 날렵하고 비유적인 어법들을 동원하며 묘사되고 있다.
장영진의 시 <나부르스 명절>은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봄 명절을 노래하고, <비참한 가을>은 강제 이주에서 노력 영웅에까지 이르는 세월을 노래하고 있다. 소품의 희곡 <어머니와 아들>은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한 아들에 대해 걱정하는 어머니, 마침내 혼인약조를 한 처녀와 만나는 장면 등을 아주 간략하면서도 강렬하게 핵심적인 주제를 조명해 보인다. 이들 작품들 또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삶과 그 내면의식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범례라 할 수 있다.
<한진희곡집> 은 1988년 알마티의 사수싀출판사에서 간행되었으나 그동안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명이 한대용인 한진은 1950년대 후반에 소련으로 망명한 북한 출신의 고려인 문인이다. 1988년에 알마타에서 출판된 <한진희곡집> 에는 모두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작품들의 면면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산부처>는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살아있는 부처’라고 자처하며 횡포가 심했던 폭군 궁예의 이야기이다. 궁예가 음모를 꾸며 양길을 제거하고 왕이 되는 과정의 1막, 전제군주로서 횡포가 심해 백성이 도탄에 빠지는 2막, 왕건이 궁으로 쳐들어오자 도망가다가 죽는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고려인 문학 중에서 민족의 역사를 다룬 많지 않은 작품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작가는 민족의 과거사 보다 궁예의 모습을 통해 스탈린과 김일성을 비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의부어머니>는 작품 말미에 1965년이라고 창작연도를 밝히고 있다. 애 딸린 홀아비에게 시집왔지만 그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새 아내를 얻는다. 어머니는 홀로 그 아이들을 정성으로 키우지만, 자신이 의붓어머니인 것을 자식들이 알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도 자식들은 늙어서 되돌아온 친아버지보다도 의붓어머니를 따른다. 이 희곡에는 남의 땅을 대신 경작해주는 ‘고본질’ 농업에 대한 상반된 시각과 그에 따른 갈등, 남자 아이를 중요시 하는 풍조, 학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별다른 계획 없이 술로 세월을 보내는 젊은이 등 당시 고려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무를 흔들지 마라>는 한진이 모스크바 국립연극대학교 희곡과에서 유학할 때 졸업작품으로 제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ㆍ25 전쟁 때 부대에서 낙오된 남한 군인 한 명과 북한 군인 한 명이 큰 홍수가 일어나자 한 나무로 피신한다는 허구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두 사람은 한 나무의 양쪽에 올라 앉아 설전을 벌이지만, 점차 가까워져서 각자가 소지하고 있던 술과 담배를 나누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경주 김가라는 점에서 서로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물에 떠내려 온 처녀 춘희까지 어울려 세 사람은 나무 위에서 잠시나마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드디어 물이 잦아들고 나무에서 내려온 세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통일이 되는 날 이 나무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군사분계선 안에 있는 이 나무는 그 후 삼십여 년 동안 사람의 그림자를 보지 못 하였다는 춘희의 방백으로 막이 내린다.
<토끼의 모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끼전>의 내용과 동일하다. 2010년 여름에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을 방문했을 때, 최근에 이 작품을 공연한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인기 있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주인공 토끼가 여자라는 점이다. 작품 말미에 이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있는데, 토끼 역을 맡을 배우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여자 역으로 고쳤다고 한다. <고려극장>의 남자 배우가 부족한 상황에 대해서는,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3대 춘향이 최 따찌아나 씨도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작품을 공연하는데, 원래의 내용은 두 남자와 한 여자 주인공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두 여자와 한 남자 주인공으로 각색하여 공연했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 가운데 일부, 곧 강태수의 시 일부와 단편 <그날과 그날밤> 그리고 최영근의 단편 <비겁쟁이>가 중앙아시아문인협회에서 발간한 <고려문화> 1ㆍ2호에 실린 바 있으나 국내 문단에서는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함께 수록했다. <한진희곡집> 또한 사정이 마찬가지여서 동일하게 정리했으며, 이 희곡집에 실린 4편의 작품 중 <의부어머니>와 <나무를 흔들지 말라>만 수록했다.
거듭 밝혀두지만 이 작품들은 그 문학적 수준과 미학적 가치보다는 현지 고려인의 생활상과 심상의 내면풍경들을 적출하는 데 효용성이 있다. 이는 민족언어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한민족 문화권 전반에 대한 각성된 인식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가 된다.
목차
제1부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연구
제2부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발굴 자료
해설 : 대륙의 평원에 가꾼 민족문화의 텃밭ㅣ김종회
강태수
리 왜체슬라브
리시연
문금동
최영근
김 부르트
장영진
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