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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도서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한국 현대문학사의 해체와 재구성

발행사항
서울 : 푸른역사, 2013
형태사항
491 p. : 삽화, 초상 ; 23 cm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연구외도서G100694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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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G100694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연구외도서
책 소개
한국문학사가 쓰이지 않는 시대, 문학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한국문학사’,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한국문학사’는 우리의 정치적·문화적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적 자산 같은 것이다. ‘문학사’는 우리의 문학적 체험과 정서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메타 지식 체계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우리 대부분이 여전히 윤동주의 <서시>를 읊을 수 있고, 황순원의 <소나기>를 마음속 아련한 동화로 품고 있는 것은 모두 ‘문학사’라는 지식의 힘이다.
그러나 그런 ‘한국문학사’가 이제는 ‘죽은 지식’이 되어버린 듯하다. 언제부턴가 한국문학사는 새로 써지지 않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적어도 진지한 연구자나 창작자는 아무도 현재 가르쳐지고 통용되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오래된 교의들, 구체적으로 국가주의와 남성-엘리트 중심주의 그리고 협애한 시·소설 중심주의를 진심으로 그리고 흔쾌히 믿지 않는 듯 보인다. 독자들의 문학에 대한 향유도 ‘한국문학사’ 바깥에서 더 많이 이뤄진다. 기존의 한국문학사는 어쩌면 진정한 문학교육과 문학적 향유의 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국문학사’는 ‘돈 되는’ 상품으로서 잘 팔리고,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열심히 가르쳐진다. 저 대입 수험 준비 현장과 노량진의 학원가에서, 무수한 전국 대학 국문학과의 ‘한국현대문학사’ 전공 강좌에서, 또 그것이 적용된 문학개론 수업들에서.

새로운 ‘한국문학사’의 이해법을 찾아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한국 현대문학사의 해체와 재구성》은 서울 시내에서 대표적인 시민인문학 강좌 공간이 된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행해진 강좌를 묶은 첫 번째 책이다. 한국문학과 현대문학사에 대한 재성찰의 시간을 갖고자 마련된 <푸른역사 아카데미>의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2011년 11월~2012년 12월, 총 25회) 강좌 중 9개의 강좌를 묶은 것이다. 한쪽에서는 분명 문학사에 대한 해체와 회의가 상식이 되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죽은 지식이 억압적 효력을 계속 발하는 현 상황을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다양한 시선과 접근법을 가진 소장 학자와 신진 연구자, 당대 문학을 생산·향유하는 주체들이 함께 모여 문학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마련해보고자 했다.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여기서 ‘문학’이라는 것은 한국 현대문학이며, ‘문학사 이후’는 이른바 ‘근대문학의 종언’이 선언되고 운위되고 또 더 이상 한국 현대문학 통사가 써지지 않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는 어떤 모습일까? 구체적으로는, 초국가적 근대문학의 유통 체계와 현대적 대중 예술, 그리고 그보다 더 거대한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생장해온 ‘네트워크로서의 한국문학사’를 생각해보고자 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의 새로운 인문학과 한국문학 연구의 힘을 통해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텍스트를 다시 읽고자 했으며, 기존의 민족주의-남성-엘리트 중심의 문학사가 배제한 ‘문학들’을 새롭게 조명해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문학사를 가로질러온 중심들을 더 깔끔하게 해체하고, 동시에 ‘복수複數의 한국문학사’의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했다. 이 같은 노력이 문학사 교육과 한국 문학사에 대한 일반적 상식을 바꿀 어떤 기점을 제공하리라 믿는다.

근대문학 종언의 시대에 문학과 문학사를 말하다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에 실린 아홉 편의 글이 담고 있는 공통의 전제는, ‘문학사’의 시간이 단선적인 구조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전통적인 ‘문학사’의 텍스트 선정과 배제의 근거가 공정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는 판단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또한 ‘한국문학사’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총점검하고 싶었다고. 사실 ‘문학’의 사회적 위상이 낮아지고 ‘근대문학의 종언’이 운위되는 시대에 문학사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곤혹스러움의 정체는 가감 없이 토론되고 신랄하게 분석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필요의 산물이다.
저자들은 이 아홉 편의 강의록 안에서 특히 ‘문학사’의 시간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잇는 단선적인 구조로밖에 구성될 수 없는지, ‘문학사’가 포괄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주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이해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것이 비선형적·병치적 시간 관계 속에 문학의 사건을 재배치하고, 동시에 전통적인 문학사의 범주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평가받던 매체와 작품들을 일궈내고 융합하는 일이기를 기대한다. 이 일이 국가와 제도에 복무하는 기존 문학사를 위한 심폐소생술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새로운 문학사(들)을 위한 산파술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또한 이 책이, 놀랍게도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써지지 않은 동아시아문학사·대중문학사·여성문학사·영상문학사·민중문학사·번역문학사 등을 위한 인식론이 어떻게 마련될 수 있겠는지를 가늠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이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뿐 아니라, 고등학교와 대학 등 문학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여러 선생님들과, 또 한국문학사라는 공유자산을 알고 누리는 시민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문학사를 보는 다른 관점

이 책은 3부로 나눠져 있다. 1부 <문학사를 보는 다른 관점>에서는 권보드래, 천정환, 소영현에 의해 ‘문학사’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 자체의 필요성이 다각도로 역설되고 있다. 근대 초기 문학에서 당대 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들이 활용되면서 전통적 문학사가 다 포괄하지 못했던 빈 지점들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권보드래는 <문학의 산포 혹은 문학의 고독―3·1운동 전후에 기대 지금을 보면서>를 통해 한국문학사의 해체·재구성의 문제의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그는 특히 기존 한국문학사 인식론의 바닥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그것은 대중성의 과소와 과잉을 모두 배제하며,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또한 민족적 경계의 교란을 견디지 못하며, 문학의 경계 역시 장르 분할의 관습에만 종속시킨다. 이러한 통찰은 배제의 체계로서의 문학사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권보드래는 이를 바탕으로 1919년 3·1운동의 ‘문화사’를 다시 읽는다. 구체적으로, 한국 현대문학의 태반 중 하나로 간주돼온 《백조》, 《폐허》 등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을 어떻게 재고할 것인지 살핀다.
천정환은 <서발턴은 쓸 수 있는가―‘문학과 정치’를 보는 다른 관점과 민중문학의 복권>에서 1970~80년대 문학사와 ‘문학과 정치’의 관계 문제를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독특한 시각으로 ‘민주의 문학’이라는 개념을 꺼낸다. 문단문학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학적’ 사건들과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글쓰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문학성’과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재해명할 단초를 찾고자 한다. 신경숙의 《외딴방》 같은 유명한 문단문학 작품뿐 아니라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나 석정남의 수기 같은 글쓰기를 거론하는데, 그의 논지에 따르면 ‘문인’이 아닌 그들의 글이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 같다. 그는 이런 인식을 통해서만 문단과 엘리트 중심의 문학사가 상대화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소영현은 <문학사의 타자들을 돌아보다―문학사에서 문학사‘들’로>에서 기존의 문학사가 누락시킨 문학사의 타자들을 불러와서 문학사를 둘러싼 논쟁의 지점들을 짚어본다. 가령, 그는 ‘하루키는 한국문학인가’, ‘팬픽은 문학사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와 같은 도발적 질문을 통해 문학의 국경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뒤흔든다. 이렇게 청소년·여성을 포함한 하위주체들에 주목하면서 그는 그들에 관한, 그들에 의한 글쓰기를 복원할 수 있는 ‘복수의 문학사’를 주장한다. 나아가 문학사의 불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들려준다.

새로운 문제틀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논점
2부 <새로운 문제틀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논점>에서는 이혜령, 신형기, 권명아에 의해 기존의 텍스트나 문학사를 구성했던 문제에 대한 재해석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문학과 정치와 현실과의 상관성이 공통된 주제라 할 수 있다.
2부를 여는 이혜령은 <식민지시대 소설 다시 읽기―염상섭 문학을 통해 본 식민지 서사와 사회주의자>를 통해 식민지시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염상섭의 소설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우리의 관심을 텍스트 분석의 틀 자체로 이끌고자 한다. 그녀는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릴 수 없었던 것’을 살펴 ‘민족문학사’의 색안경에 갇혀 있던 우리 눈을 새로 틔워준다. 우선 식민지시기 한국문학이 식민자인 일본인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살피고 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 문학이 다루지 않았던 것/다룰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제국의 권력에 협력했던 원주민은 식민지 문학에서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식민지라는 조건은 문학의 존재 가능성에 어떤 제약을 가하는 것일까. 전복적 사유를 요청하는 그의 작업은 문학이 담을 수 없었던 ‘존재/현실’ 영역에 대한 복원이 어떻게 (불/)가능한가에 대한 도전적 시도다.
신형기는 <1960년대의 ‘이야기’와 4·19, 5·16 혁신 담론의 행방>에서 주로 4·19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이 이야기란 집단의 정체성과 기억을 틀 짓고 전승하게 하는 서사체들이다. 정신분석학적이고도 정치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는 그런 이야기의 주체는 회고록과 수기 등의 주체이며 ‘입(또는 마이크)’을 가진 존재들이다. 당연히 이는 당대의 지배적 문학과 상호작용한다. 신형기는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근본적인 힘으로서 지배 이데올로기와 작용해왔는지를 살핀다.
<문학 ‘공동체’ 바깥에 선 이의 문학 이야기―문서고와 삶 사이의 문학-사>를 통해 권명아가 문학사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우회적이다. 그에게서 문학사가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의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그로부터 야기된 질문들 자체다. 문학에서 출발해서 파시즘·젠더·정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던 그는 규율로든 언어로든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번역될 수 없는 정념들, 불가해한 것,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다, 이는 어떤 시대 또는 공동체의 문법 안에서 불온하고 불가해한 존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계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평행이론처럼 공동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은 문학사에 대한 우리의 질문과 닮아 있다. 그의 작업은 문학사에 대한 질문이 우회의 선을 따라가면 우리의 삶 자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복수의 문학사와 다른 장르
3부 <복수의 문학사와 다른 장르>에서는 백문임, 이영미, 정여울에 의해 그간 문학이 영향을 주고받았던 영화·드라마·음악 등을 포함한 대중문화 영역과의 관계가 검토되고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대안적 콘텐츠 모색의 가능성이 탐색되고 있다.
3부의 글들은 기존의 문학사가 결코 포괄하지 못하는 문학의 경계에 관한 논의들이다. 백문임은 <문학사와 영화사―임화가 조선영화에 대해 말한 것>에서 한국 현대 비평사나 시사詩史가 기억하는 임화와는 전혀 다른 임화에 대해 짚어준다. 시도 문학사에 대한 논의도 아닌 임화의 영화론에 대한 소개는 그 자체만으로 전통적 문학사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문학사를 둘러싼 문제 가운데 우리가 충분히 잘 알고 있지만 종종 망각하고 마는 사실을 환기한다. 문학사를 구성하는 콘텐츠는 필요에 따라 변형·축소되거나 과장되기도 한다는 사실 말이다. 무엇보다 임화의 영화론에 대한 그의 검토는 문학과 영상 미디어의 긴밀한 상관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영미는 <말문학/글문학, 한국문학사의 새 판 짜기―<맨발의 청춘>과 <동백아가씨>를 중심으로>를 통해 196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와 대중가요를 거점으로 ‘말문학’을 말한다. 그는 영화와 연극, 방송극과 노래와 같은 ‘말문학’이 왜 문학사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다룬다. 사실 문학 연구자들이 영화와 드라마, 방송극, 대중가요를 연구한 역사는 짧지 않다. 완강한 문학사의 성문을 뚫고 있지는 못하지만, 좋은 개별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간의 직업들이 그냥 ‘틀깨기’의 시도에 가까웠음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그는 축적된 성과들을 토대로 어떤 새로운 틀짜기가 가능한가를 검토한다. 이것은 문학사에 대한 도전적 문제제기가 피할 수 없는 행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새로운 틀짜기는 세상과 인간을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의 마련이기 때문이다.
소장 문학비평가로 이름 있는 정여울은 <팩션 공화국에서 역사소설 읽기>에서 팩션을 다룬다. 팩션은 포스트모던시대의 역사소설과 역사 드라마들을 일컫는다. 우리는 사극史劇이 끝없이 만들어지고 향유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거기에는 대중의 정치적인 꿈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다차원의 시간이 개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담하게도 정여울 선생은 TV드라마 <대장금>이나 <뿌리깊은 나무> 등의 김영현 작가야말로 ‘훌륭한 역사가’라고 단언한다. 이 말을 ‘역사학자’들이 듣는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정여울 선생은 풍부한 논거를 들어 왜 역사가 역사가만의 것이 아닌지를 들려준다.
목차
책머리에 1부 문학사를 보는 다른 관점 2부 새로운 문제틀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논점 3부 복수의 문학사와 다른 장르 주석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