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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실패한 '진보의 착각'을 또다시 되풀이할 것인가?
작금의 한국 경제 상황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꼬인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어지럽게 얽히고 헝클어진 상태, 즉 '난마'와 같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 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처럼 명쾌한 대안이 필요한 시점에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다시금 나섰다.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선입견 없는 냉철한 현실 인식으로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사회적 대타협과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정승일, 이종태 공저자와 함께다. 무엇이 이들을 7년 만에 다시 모이게 한 것일까?
언뜻 보면 이들이 7년 전의 저서에서 강하게 주장했던 복지국가라는 비전은 바야흐로 여야를 초월하여 대세가 된 듯하다. 2005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 개혁 진영조차 근본 개혁도 모자랄 판에 웬 뜬금없는 복지 타령이냐며 마뜩잖아했던 것이 당시 반응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를 명백히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와 국제 투기 자본을 위시한 금융 자본의 준동을 강력하게 경고했던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혜안은 이후 하나씩 입증되었다. 2008년 가을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는 실물 경제를 꼬리로 전락시키고 금융이 몸통 노릇을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의 한계와 문제점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보수 세력의 선진화·시장화론에 맞설 대안적 담론을 희구하던 진보 개혁 진영이 복지국가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2010년 6월 지방 선거에서 보편적 무상 급식이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과 진보 정당이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고 여당인 한나라당도 일정하게 받아들이면서 복지국가 의제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지배적 의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2011년 가을부터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이라는 화두가 다시 득세한 것이다. 저자들은 이 화두에서 이미 실패로 입증된 '진보의 착각'이 되풀이되는 것을 발견한다. 진보의 착각이란 무엇인가? 시장주의에 경도되어 정부의 산업 정책을 반대하고 결과적으로 1원 1표로 대표되는 주주 자본주의에 친화적이며 민영화에 찬성하고 노동조합이 자본에 밀려 약체가 되는 것을 방관한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을 경제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집행한 것을 말한다. 진보의 착각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는 원조 우파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모두 드러냈다. 그런데 우파 신자유주의가 지긋지긋하다고 다시 실패한 좌파 신자유주의로 돌아갈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신자유주의라는 불판 자체를 갈아 치울 때가 아닌가. 그러면 새로운 불판은 무엇인가. 이것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집필한 저자들의 문제의식이다.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일 뿐이다
뼈저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임기가 끝나 가는 시점에 이런 착각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그 이면에 드리운 자유주의의 깊은 그림자를 주목한다. 이 책이 자유주의의 본질적 위험성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를 담은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사에서 한 번도 정면 대결이 벌어지지 않았던 '자유주의'와의 일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하준 교수는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라고 잘라 말한다. 이 개념에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는 리버럴(liberal)이라는 미국 지식인 사회와 정계의 어법에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자유주의와 진보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탄생한 유럽에서는 18~19세기 지주나 봉건 귀족 같은 특권 계급에 대항해 시장주의 질서를 형성하고자 했던 흐름을 리버럴이라 하고 이런 리버럴이 만든 시장 질서마저 바꾸자고 주장하는 세력을 진보라고 명확히 통칭한다.
자본주의와 함께 만들어진 고전적 자유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그 생명을 다했다. 이어서 탄생한 20세기 중반의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사회적 자유주의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 방점을 자유주의가 아닌 진보에 두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만발한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의 진보적 자유주의는 그 방점을 진보가 아닌 자유주의로 옮겼다. 바로 이것이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서구에서도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장했던 정파와 지식인들이 사실상 그 행동에서는 신자유주의자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이유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2010년 이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우파 신자유주의(오리지널 신자유주의)이건 좌파 신자유주의(진보적 자유주의)이건 관계없이 다시 자유 시장의 합리성과 투명성, 효율성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가의 시장 통제와 개입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시장 지상주의로 향하는 것이다.
이 자유주의의 입김이 얼마나 센지를 보여 주는 사례가 미국 오바마 정부의 구제 금융 투입 방식이다. '은행 국유화는 사회주의'라는 색깔론을 펼치면서 월스트리트는 물론 루카스 같은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까지 모두 반대하는 통에 오바마 정부는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같은 금융 회사에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 방식으로 구제 금융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로는 정부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가 없다. 결국 구제 금융으로 살아난 금융 회사들이 퇴직 CEO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주고 보너스 잔치를 벌여도 일체 개입할 수 없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정부는 기업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주의 논리에 세뇌된 결과이자, 금융 자본의 엄청난 로비에 밀린 것이다.
경제 민주화 구호 아래 MB 정부 초기부터 나타난 시장주의의 반격
자유주의와 신고전파 경제학의 뿌리가 강한 영미권은 그렇다 치고, 한국도 같은 상황일까.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자유주의와 완고한 시장주의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과 뒤엉켜 수시로 출몰했다. 2008년 여름의 금리 인상 논쟁, 외환 시장 개입 논쟁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그해 여름 국제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기승을 부려 원유가가 2008년 초 70달러대에서 7월에는 148달러로 2배 이상 뛰었고 밀 가격은 6개월 사이에 네 배나 올랐다. 수입 물가의 영향으로 국내의 도소매 물가가 급등하자 국내 시장 개혁과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일제히 '물가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리고, 원화 가치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하준 교수는 금리 인상이나 재정 긴축은 금융 자산가들에게나 좋은 일이고 그게 바로 시장주의라는 점을 지적한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진보 세력이 금리 인상이나 재정 긴축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의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큰손들이 달러 가치의 하락을 염두에 두고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면서 벌어진 일로서, 금리 인상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또 당시 경제 민주화론자들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같은 시장 개혁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원화 약세 정책을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강만수 장관 해임과 외환 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 중지를 요구했다. 외환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관치라며 반발했고, 원화 약세가 수출 대기업에만 이익을 준다는 분노가 바탕에 깔렸다. 결국 이 논쟁들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공정하게 관리만 하자는 시장주의의 반격이다. 국제 금융 자본을 통제하거나 주주 자본주의를 시정하여 경제 체질을 바꾸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시장주의자들의 관심 밖이다.
박정희의 유령과 싸우다 한미 FTA를 불러들였다
이번 책은 전체 7개 장 가운데 두 장을 박정희와 재벌 문제에 할애하고 있다.(3장 '왜 다시 박정희를 불러내는가?', 4장 '재벌 개혁,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이 주제들은 이미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 출간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사안이다.
박정희가 만든 경제 구조의 유산인 관치, 재벌, 토건 경제가 오늘의 우리를 계속 괴롭힌다는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장하준을 비롯한 저자들은 어떤 의견일까? 경제 민주화론자들이 박정희 체제를 자꾸 불러내는 것은 자신들이 옹호한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변호하는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저자들은 일축한다. 문제는 변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정책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절의 폐해였다는 관치에 대한 거부감이 산업 정책에 대한 반대로 나타난다거나 재벌 경제를 타파해야 한다는 논리로 옮겨 가다 보니, 쌍용자동차 사례와 같이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한 뒤 기술을 빼먹고 '먹튀'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또 박정희와 재벌에 대한 반감은 종종 현실 인식마저 왜곡한다. '재벌이 있는 한 한국 경제에 진정한 혁신은 없다'는 사고가 우리 사회에 삼성전자 대 애플, 이건희 대 스티브 잡스, 갤럭시 대 아이폰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전자는 사이비이고 후자는 진정한 혁신이라거나 전자는 나쁜 재벌이고 후자는 진정한 혁신적 기업가라는 편견을 심어 놓는다. 이러다 보니 애플이 가진 비교 우위는 컴퓨터 과학과 기초 수학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국방부가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전략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발전시킨 미국적 특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은 간과된다. 감동을 주는 소프트웨어 회사 이미지를 지닌 애플 또한 아이폰을 제조하는 대만계, 중국계 회사의 하청 기업들에 대한 임금 착취로 원성을 사고 있으며 혁신 능력이 떨어진다는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기술 특허가 많다는 사실은 주목되지 않는다.
이런 인식이 더 나아가 경제를 굴뚝 경제와 지식 경제로 나누고 대립시키는 난센스로 발전한다. 굴뚝 경제가 태동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이유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에 계속 응용했기 때문이듯이, 지식은 어느 시대의 경제에서나 중요했다. 지식 경제나 탈산업 사회를 내세우며 이 단계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가 해결된 듯이 포장하는 것은 경제사에 대한 인식 결여이자 '제3의 길'로 대표되는 중도좌파 노선, 미국 리버럴들의 시각과 겹치는 것이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리버럴 관점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 추진으로 이어졌다. IMF 이후 금융 산업을 첨단 서비스 산업으로 보고 동북아 금융 허브를 지향하고 월스트리트 모델을 수입하여 금융과 기업을 바꾸자는 논의로 확대된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도 경제를 민주화해야 한다거나 재벌을 개혁하자는 대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시장주의나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민주화론과 재벌 개혁론은 지난 시기에 엄청난 정책적 실패를 낳았는데 이명박 정부가 밉다고 해서, 재벌이 동네 치킨 집까지 잠식해 들어가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다시 똑같은 잘못된 수술 칼을 집어 들 것이냐고 저자들은 반문한다. 중요한 것은 재벌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재벌이 우리 사회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도록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이다. 저자들은 '주주 자본주의 규제', '기업 집단법 제정', '재벌이 첨단 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산업 정책' 등을 현실적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 시스템이자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 구매가 곧 복지
영미식 자유주의에 깊이 침윤된 풍토에 더하여 박정희, 재벌 체제 등 대립과 반목을 불러일으키는 낡은 유산들이 첩첩이 쌓인 오늘의 난마처럼 얽힌 현실을 돌파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장하준을 비롯한 저자들이 그토록 치열하게 자유주의를 비판한 이유는 바로 복지국가 비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먼저 '왜 생산은 않고 분배만 하려 드느냐'는 보수 쪽의 시각이 있다.
저자들은 가난한 사람만 골라 시혜를 주듯 지원하는 미국, 영국식 복지를 선별적 복지 또는 잔여적 복지로 지칭하며, 생산과 복지가 긴밀히 연결되어 선순환하는 '생산적 복지'와 구분한다. 생산적 복지의 사례는 북유럽, 독일 등이다. 극빈자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는다는 면에서 '보편적 복지'라고도 한다.
현대 경제의 발전은 복지국가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고도화하는 현대 경제에서는 실직자가 새로운 직종으로 옮기려면 상당 기간 재교육이 불가피하다. 이를 감당할 국가적 대책이 없다면 경제 전체의 산업 고도화는 요원하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성향이 농후한 다보스 포럼에서 조사하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설문 조사에서 항시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복지국가가 곧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즉 생산에 유리한 사회를 형성하는 증거라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이런 국가적 대책마저 시장에 일임하자는 생각이 미국 리버럴의 철학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산적 복지, 보편적 복지를 하자면 당연히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 복지 예산은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끝에서 두세 번째인 9퍼센트다. 스웨덴이 30퍼센트가 넘고 미국은 13~14퍼센트이며 OECD 평균에 가까운 이탈리아가 19.3퍼센트 수준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수준의 복지를 실현하려 해도 현재보다 GDP 대비 복지 예산을 10퍼센트 더 늘려야 하며 이는 2012년 기준으로 140조 원이다. 대단히 큰 액수이기에 매년 단계적으로 복지 예산을 늘려 10년 뒤 OECD 평균의 복지국가를 만드는 구상이 필요하다. 이것이 달성되면 다시 2023년부터 스웨덴 수준의 복지국가를 향한 10년간의 대장정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산층을 비롯한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결단이 요구된다. 복지 예산의 증가는 세금의 증액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금을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같이 쓰는 돈'으로 보고 복지 지출을 '공짜'가 아닌 '공동 구매'로 보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공동 구매의 장점은 이미 국민건강보험에서 확인되었다. 개별적으로 약국에서 의약품을 사는 것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같은 정부 기관이 직접 제약 회사와 협상해 구매하는 편이 훨씬 싸다. 이런 원리는 교육, 노인연금 등에도 적용된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처럼 복지도 국민의 힘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보편적 복지의 실현은 재벌 개혁 운동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OECD 평균인 90퍼센트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2010년 기준 약 12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가입자 일인당 월 평균 1만 1000원을 추가 부담하면 된다. 2010년부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이 추진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이를 통해 한국도 유럽에서 시행하는 사실상의 무상 의료를 가능하게 한다. 자연히 민간 보험회사 특히 삼성생명을 주력 계열사로 두고 있는 삼성그룹의 입지가 줄어든다. 경제 민주화 따로 재벌 개혁 따로가 아니라 복지국가의 비전 자체가 모든 것을 시장에서 해결하라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안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지국가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까. 저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자신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통해 장하준을 비롯한 세 저자가 역설하는 점은 결국 이것이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알려진 스웨덴 시스템도 결코 평탄하게 실현된 것이 아니다. 반세기 가까이 있었던 온갖 정치, 경제적 논쟁과 대립을 극복하고 국민의 힘을 모아 형성한 것이다.
이 책은 전면에 걸쳐 경제 민주화론을 비판하고 자유주의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다. 이는 묵은 분노와 감정의 대립을 넘어 현실을 객관적인 눈으로 인식하고 진보적 관점에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묵직한 고뇌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제야말로 99퍼센트가 나서서 10년 뒤, 50년 뒤 대한민국의 모습을 결정할 순간이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작금의 한국 경제 상황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꼬인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어지럽게 얽히고 헝클어진 상태, 즉 '난마'와 같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 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처럼 명쾌한 대안이 필요한 시점에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다시금 나섰다.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선입견 없는 냉철한 현실 인식으로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사회적 대타협과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정승일, 이종태 공저자와 함께다. 무엇이 이들을 7년 만에 다시 모이게 한 것일까?
언뜻 보면 이들이 7년 전의 저서에서 강하게 주장했던 복지국가라는 비전은 바야흐로 여야를 초월하여 대세가 된 듯하다. 2005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 개혁 진영조차 근본 개혁도 모자랄 판에 웬 뜬금없는 복지 타령이냐며 마뜩잖아했던 것이 당시 반응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를 명백히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와 국제 투기 자본을 위시한 금융 자본의 준동을 강력하게 경고했던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혜안은 이후 하나씩 입증되었다. 2008년 가을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는 실물 경제를 꼬리로 전락시키고 금융이 몸통 노릇을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의 한계와 문제점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보수 세력의 선진화·시장화론에 맞설 대안적 담론을 희구하던 진보 개혁 진영이 복지국가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2010년 6월 지방 선거에서 보편적 무상 급식이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과 진보 정당이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고 여당인 한나라당도 일정하게 받아들이면서 복지국가 의제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지배적 의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2011년 가을부터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이라는 화두가 다시 득세한 것이다. 저자들은 이 화두에서 이미 실패로 입증된 '진보의 착각'이 되풀이되는 것을 발견한다. 진보의 착각이란 무엇인가? 시장주의에 경도되어 정부의 산업 정책을 반대하고 결과적으로 1원 1표로 대표되는 주주 자본주의에 친화적이며 민영화에 찬성하고 노동조합이 자본에 밀려 약체가 되는 것을 방관한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을 경제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집행한 것을 말한다. 진보의 착각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는 원조 우파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모두 드러냈다. 그런데 우파 신자유주의가 지긋지긋하다고 다시 실패한 좌파 신자유주의로 돌아갈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신자유주의라는 불판 자체를 갈아 치울 때가 아닌가. 그러면 새로운 불판은 무엇인가. 이것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집필한 저자들의 문제의식이다.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일 뿐이다
뼈저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임기가 끝나 가는 시점에 이런 착각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그 이면에 드리운 자유주의의 깊은 그림자를 주목한다. 이 책이 자유주의의 본질적 위험성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를 담은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사에서 한 번도 정면 대결이 벌어지지 않았던 '자유주의'와의 일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하준 교수는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라고 잘라 말한다. 이 개념에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는 리버럴(liberal)이라는 미국 지식인 사회와 정계의 어법에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자유주의와 진보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탄생한 유럽에서는 18~19세기 지주나 봉건 귀족 같은 특권 계급에 대항해 시장주의 질서를 형성하고자 했던 흐름을 리버럴이라 하고 이런 리버럴이 만든 시장 질서마저 바꾸자고 주장하는 세력을 진보라고 명확히 통칭한다.
자본주의와 함께 만들어진 고전적 자유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그 생명을 다했다. 이어서 탄생한 20세기 중반의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사회적 자유주의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 방점을 자유주의가 아닌 진보에 두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만발한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의 진보적 자유주의는 그 방점을 진보가 아닌 자유주의로 옮겼다. 바로 이것이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서구에서도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장했던 정파와 지식인들이 사실상 그 행동에서는 신자유주의자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이유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2010년 이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우파 신자유주의(오리지널 신자유주의)이건 좌파 신자유주의(진보적 자유주의)이건 관계없이 다시 자유 시장의 합리성과 투명성, 효율성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가의 시장 통제와 개입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시장 지상주의로 향하는 것이다.
이 자유주의의 입김이 얼마나 센지를 보여 주는 사례가 미국 오바마 정부의 구제 금융 투입 방식이다. '은행 국유화는 사회주의'라는 색깔론을 펼치면서 월스트리트는 물론 루카스 같은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까지 모두 반대하는 통에 오바마 정부는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같은 금융 회사에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 방식으로 구제 금융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로는 정부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가 없다. 결국 구제 금융으로 살아난 금융 회사들이 퇴직 CEO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주고 보너스 잔치를 벌여도 일체 개입할 수 없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정부는 기업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주의 논리에 세뇌된 결과이자, 금융 자본의 엄청난 로비에 밀린 것이다.
경제 민주화 구호 아래 MB 정부 초기부터 나타난 시장주의의 반격
자유주의와 신고전파 경제학의 뿌리가 강한 영미권은 그렇다 치고, 한국도 같은 상황일까.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자유주의와 완고한 시장주의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과 뒤엉켜 수시로 출몰했다. 2008년 여름의 금리 인상 논쟁, 외환 시장 개입 논쟁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그해 여름 국제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기승을 부려 원유가가 2008년 초 70달러대에서 7월에는 148달러로 2배 이상 뛰었고 밀 가격은 6개월 사이에 네 배나 올랐다. 수입 물가의 영향으로 국내의 도소매 물가가 급등하자 국내 시장 개혁과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일제히 '물가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리고, 원화 가치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하준 교수는 금리 인상이나 재정 긴축은 금융 자산가들에게나 좋은 일이고 그게 바로 시장주의라는 점을 지적한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진보 세력이 금리 인상이나 재정 긴축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의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큰손들이 달러 가치의 하락을 염두에 두고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면서 벌어진 일로서, 금리 인상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또 당시 경제 민주화론자들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같은 시장 개혁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원화 약세 정책을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강만수 장관 해임과 외환 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 중지를 요구했다. 외환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관치라며 반발했고, 원화 약세가 수출 대기업에만 이익을 준다는 분노가 바탕에 깔렸다. 결국 이 논쟁들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공정하게 관리만 하자는 시장주의의 반격이다. 국제 금융 자본을 통제하거나 주주 자본주의를 시정하여 경제 체질을 바꾸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시장주의자들의 관심 밖이다.
박정희의 유령과 싸우다 한미 FTA를 불러들였다
이번 책은 전체 7개 장 가운데 두 장을 박정희와 재벌 문제에 할애하고 있다.(3장 '왜 다시 박정희를 불러내는가?', 4장 '재벌 개혁,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이 주제들은 이미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 출간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사안이다.
박정희가 만든 경제 구조의 유산인 관치, 재벌, 토건 경제가 오늘의 우리를 계속 괴롭힌다는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장하준을 비롯한 저자들은 어떤 의견일까? 경제 민주화론자들이 박정희 체제를 자꾸 불러내는 것은 자신들이 옹호한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변호하는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저자들은 일축한다. 문제는 변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정책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절의 폐해였다는 관치에 대한 거부감이 산업 정책에 대한 반대로 나타난다거나 재벌 경제를 타파해야 한다는 논리로 옮겨 가다 보니, 쌍용자동차 사례와 같이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한 뒤 기술을 빼먹고 '먹튀'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또 박정희와 재벌에 대한 반감은 종종 현실 인식마저 왜곡한다. '재벌이 있는 한 한국 경제에 진정한 혁신은 없다'는 사고가 우리 사회에 삼성전자 대 애플, 이건희 대 스티브 잡스, 갤럭시 대 아이폰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전자는 사이비이고 후자는 진정한 혁신이라거나 전자는 나쁜 재벌이고 후자는 진정한 혁신적 기업가라는 편견을 심어 놓는다. 이러다 보니 애플이 가진 비교 우위는 컴퓨터 과학과 기초 수학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국방부가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전략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발전시킨 미국적 특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은 간과된다. 감동을 주는 소프트웨어 회사 이미지를 지닌 애플 또한 아이폰을 제조하는 대만계, 중국계 회사의 하청 기업들에 대한 임금 착취로 원성을 사고 있으며 혁신 능력이 떨어진다는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기술 특허가 많다는 사실은 주목되지 않는다.
이런 인식이 더 나아가 경제를 굴뚝 경제와 지식 경제로 나누고 대립시키는 난센스로 발전한다. 굴뚝 경제가 태동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이유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에 계속 응용했기 때문이듯이, 지식은 어느 시대의 경제에서나 중요했다. 지식 경제나 탈산업 사회를 내세우며 이 단계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가 해결된 듯이 포장하는 것은 경제사에 대한 인식 결여이자 '제3의 길'로 대표되는 중도좌파 노선, 미국 리버럴들의 시각과 겹치는 것이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리버럴 관점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 추진으로 이어졌다. IMF 이후 금융 산업을 첨단 서비스 산업으로 보고 동북아 금융 허브를 지향하고 월스트리트 모델을 수입하여 금융과 기업을 바꾸자는 논의로 확대된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도 경제를 민주화해야 한다거나 재벌을 개혁하자는 대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시장주의나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민주화론과 재벌 개혁론은 지난 시기에 엄청난 정책적 실패를 낳았는데 이명박 정부가 밉다고 해서, 재벌이 동네 치킨 집까지 잠식해 들어가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다시 똑같은 잘못된 수술 칼을 집어 들 것이냐고 저자들은 반문한다. 중요한 것은 재벌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재벌이 우리 사회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도록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이다. 저자들은 '주주 자본주의 규제', '기업 집단법 제정', '재벌이 첨단 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산업 정책' 등을 현실적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 시스템이자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 구매가 곧 복지
영미식 자유주의에 깊이 침윤된 풍토에 더하여 박정희, 재벌 체제 등 대립과 반목을 불러일으키는 낡은 유산들이 첩첩이 쌓인 오늘의 난마처럼 얽힌 현실을 돌파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장하준을 비롯한 저자들이 그토록 치열하게 자유주의를 비판한 이유는 바로 복지국가 비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먼저 '왜 생산은 않고 분배만 하려 드느냐'는 보수 쪽의 시각이 있다.
저자들은 가난한 사람만 골라 시혜를 주듯 지원하는 미국, 영국식 복지를 선별적 복지 또는 잔여적 복지로 지칭하며, 생산과 복지가 긴밀히 연결되어 선순환하는 '생산적 복지'와 구분한다. 생산적 복지의 사례는 북유럽, 독일 등이다. 극빈자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는다는 면에서 '보편적 복지'라고도 한다.
현대 경제의 발전은 복지국가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고도화하는 현대 경제에서는 실직자가 새로운 직종으로 옮기려면 상당 기간 재교육이 불가피하다. 이를 감당할 국가적 대책이 없다면 경제 전체의 산업 고도화는 요원하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성향이 농후한 다보스 포럼에서 조사하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설문 조사에서 항시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복지국가가 곧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즉 생산에 유리한 사회를 형성하는 증거라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이런 국가적 대책마저 시장에 일임하자는 생각이 미국 리버럴의 철학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산적 복지, 보편적 복지를 하자면 당연히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 복지 예산은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끝에서 두세 번째인 9퍼센트다. 스웨덴이 30퍼센트가 넘고 미국은 13~14퍼센트이며 OECD 평균에 가까운 이탈리아가 19.3퍼센트 수준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수준의 복지를 실현하려 해도 현재보다 GDP 대비 복지 예산을 10퍼센트 더 늘려야 하며 이는 2012년 기준으로 140조 원이다. 대단히 큰 액수이기에 매년 단계적으로 복지 예산을 늘려 10년 뒤 OECD 평균의 복지국가를 만드는 구상이 필요하다. 이것이 달성되면 다시 2023년부터 스웨덴 수준의 복지국가를 향한 10년간의 대장정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산층을 비롯한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결단이 요구된다. 복지 예산의 증가는 세금의 증액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금을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같이 쓰는 돈'으로 보고 복지 지출을 '공짜'가 아닌 '공동 구매'로 보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공동 구매의 장점은 이미 국민건강보험에서 확인되었다. 개별적으로 약국에서 의약품을 사는 것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같은 정부 기관이 직접 제약 회사와 협상해 구매하는 편이 훨씬 싸다. 이런 원리는 교육, 노인연금 등에도 적용된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처럼 복지도 국민의 힘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보편적 복지의 실현은 재벌 개혁 운동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OECD 평균인 90퍼센트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2010년 기준 약 12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가입자 일인당 월 평균 1만 1000원을 추가 부담하면 된다. 2010년부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이 추진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이를 통해 한국도 유럽에서 시행하는 사실상의 무상 의료를 가능하게 한다. 자연히 민간 보험회사 특히 삼성생명을 주력 계열사로 두고 있는 삼성그룹의 입지가 줄어든다. 경제 민주화 따로 재벌 개혁 따로가 아니라 복지국가의 비전 자체가 모든 것을 시장에서 해결하라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안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지국가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까. 저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자신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통해 장하준을 비롯한 세 저자가 역설하는 점은 결국 이것이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알려진 스웨덴 시스템도 결코 평탄하게 실현된 것이 아니다. 반세기 가까이 있었던 온갖 정치, 경제적 논쟁과 대립을 극복하고 국민의 힘을 모아 형성한 것이다.
이 책은 전면에 걸쳐 경제 민주화론을 비판하고 자유주의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다. 이는 묵은 분노와 감정의 대립을 넘어 현실을 객관적인 눈으로 인식하고 진보적 관점에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묵직한 고뇌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제야말로 99퍼센트가 나서서 10년 뒤, 50년 뒤 대한민국의 모습을 결정할 순간이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목차
시작하며 : 우리는 왜 자유주의를 경계해야 하는가?
1장 지금의 금융 위기는 복지와 무관하다
2장 보수도 진보도 월스트리트를 선망한다
3장 왜 다시 박정희를 불러내는가?
4장 재벌 개혁,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5장 가장 좋은 FTA 대책이 바로 복지국가다
6장 복지는 우리 모두를 위한 공동구매다!
7장 노동도 부동산도 결국 복지 문제다
마치며 : 경제를 발전시켰듯이 복지도 발전시킬 수 있다